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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깊은 한 잔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에너지를 쓰지 마라 — 스토아 철학과 개발자 마인드셋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에너지를 쓰지 마라 — 스토아 철학과 개발자 마인드셋

깊은 한 잔 — AI 시대의 인문학적 사유

고대 로마 열주 앞에서 노트북을 들고 서 있는 현대인의 뒷모습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로마 제국의 황제였다. 전쟁터에서도, 역병이 도는 수도에서도, 그는 매일 밤 일기를 썼다. 그 일기가 《명상록》이다.

2천 년 전 황제의 고민이 2026년 개발자의 고민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네가 통제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하라"

스토아 철학의 핵심은 단순하다. 세상을 두 가지로 나눠라.

통제 가능: 내 생각, 내 반응, 내 노력 통제 불가: 타인의 행동, 시장, 날씨, 배포 후 터지는 버그

에픽테토스는 이렇게 말했다. "고통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사건에 대한 판단에서 온다."

프로덕션에서 장애가 터졌다. 사건 자체는 바꿀 수 없다. 이미 터졌으니까. 하지만 그 앞에서 패닉할지, 침착하게 로그를 열지는 내가 정한다.


개발자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

솔직하게 적어보자.

  • 클라이언트가 스펙을 바꾸는 것
  • PM이 데드라인을 앞당기는 것
  • 동료가 리뷰를 안 해주는 것
  • 배포 후 유저가 버그를 찾는 것
  • AI가 내 직무를 위협하는 것
  • 오픈소스 라이브러리가 deprecated 되는 것

이 목록을 보고 스트레스받는다면 — 그게 정상이다. 하지만 스토아는 묻는다. "이 중에 네가 바꿀 수 있는 게 뭐야?"

폭풍우 치는 바다에서 작은 배 위에 한 사람이 고요하게 앉아 있는 모습

답은 하나다. 내 반응.

스펙이 바뀌면? 영향 범위를 분석한다. 감정적으로 반응하기 전에. AI가 위협적이면? AI를 도구로 쓰는 법을 배운다. 두려워하기 전에.


아모르 파티 — 운명을 사랑하라

니체도 비슷한 말을 했지만, 원조는 스토아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이렇게 썼다.

"장작에 불이 붙으면, 불은 장작에 던져지는 모든 것을 연료로 바꾼다. 작은 등불은 바람에 꺼지지만, 큰 불은 바람마저 연료로 삼는다."

레거시 코드를 인수받았다. 테스트도 없고, 문서도 없다. 작은 등불이면 꺼진다. 하지만 이걸 기회로 볼 수 있다면 — 리팩토링하면서 시스템을 가장 깊이 이해하는 사람이 된다.

번아웃의 원인은 대부분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려는 시도"에서 온다. 스토아는 그 시도를 멈추라고 말한다. 멈추는 게 포기가 아니다. 에너지를 재배치하는 것이다.


일일 회고: 개발자의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매일 밤 세 가지를 적었다.

  1. 오늘 잘한 것
  2. 오늘 잘못한 것
  3. 내일 다르게 할 것

밤, 책상 위 노트와 펜, 옆에 식어가는 커피 한 잔

이걸 개발자 버전으로 바꾸면:

  1. 오늘 해결한 문제는 뭔가
  2. 어디서 시간을 낭비했나 (통제 불가한 것에 에너지 쓴 건 아닌가)
  3. 내일은 뭘 다르게 할 수 있나

5분이면 충분하다. 매일 하면 3개월 후에 자기 패턴이 보인다. "나는 코드 리뷰 피드백에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경향이 있구나." "나는 배포 전에 불필요하게 불안해하는구나."

패턴이 보이면 바꿀 수 있다. 안 보이면 계속 반복한다.


2천 년 된 프레임워크

스토아 철학은 2천 년 전의 라이브러리다. deprecated 되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star가 늘고 있다.

《명상록》은 GitHub star 0개짜리 개인 프로젝트였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출판할 생각이 없었다. 자기를 위해 쓴 코드 — 아니, 자기를 위해 쓴 글이었다.

그 글이 2천 년 후에도 읽히고 있다.

당신이 오늘 밤 적는 회고도, 2천 년은 아니더라도, 3개월 후의 당신에게는 《명상록》이 될 수 있다.

커피가 식기 전에 — 오늘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얼마나 에너지를 썼는지 한 번 돌아보자.


참고: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 에픽테토스, 《엔케이리디온 (편람)》
  • 라이언 홀리데이, 《에고라는 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