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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깊은 한 잔

아무 의미 없으니까, 전부 의미 있다 — 낙관적 허무주의에 대하여

hero

Kurzgesagt의 "Optimistic Nihilism" 영상은 6분짜리지만, 잔상이 꽤 오래 남는다.

우주는 2000억 개의 은하, 1조 개의 별로 이루어져 있다. 인간은 그 안의 먼지 위에 잠깐 붙어 사는 존재다. 100세까지 산다 해도 고작 5,200주. 죽으면 끝이다. 우주도 결국 열사(heat death)로 끝난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허무하다. 그런데 Kurzgesagt는 정반대로 뒤집는다.

"목적이 없으니까, 스스로 정하면 된다."


허무주의가 왜 '낙관적'인가

universe

보통 허무주의라고 하면 "아무것도 의미 없으니 아무것도 하지 말자"를 떠올린다. 니체가 경고한 수동적 허무주의다.

낙관적 허무주의는 다르다. "아무것도 의미 없으니까, 내가 정한 의미만이 진짜다"는 선언이다.

차이가 미묘하지만 결정적이다.

수동적 허무주의는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을 이유를 준다. 낙관적 허무주의는 뭐든 해볼 이유를 준다. 어차피 우주적 스케일에서 모든 실수는 무효가 될 테니까. 모든 부끄러움은 잊힐 테니까.


개발자의 번아웃에게

nietzsche

코드를 쓰고, 서비스를 만들고, 버그를 고친다.

이 일을 15년 넘게 하다 보면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이 코드도 결국 레거시가 되고, 이 서비스도 언젠가 내려간다. 뭘 위해 이렇게 야근을 하고 있지?"

번아웃의 핵심은 "의미 없음"에 대한 직감이다. 열심히 했는데 의미가 보이지 않을 때 사람은 무너진다.

낙관적 허무주의는 이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맞아, 의미 없어. 그런데 그게 왜 문제야?"

의미가 외부에서 주어지기를 기대하니까 번아웃이 오는 거다. 회사가, 시장이, 유저가 의미를 줄 거라고 생각하면 반드시 실망한다. 의미는 처음부터 없었다. 그러니까 내가 정하면 된다.

"이 코드가 영원하지 않아도, 지금 이 문제를 풀어내는 과정이 재밌다." "이 서비스가 내려가더라도, 만들면서 배운 건 남는다."


AI가 전부 해줄 수 있는 시대에

dawn studio

AI가 코드를 쓴다. 글도 쓴다. 그림도 그린다. 나보다 빠르고, 가끔은 나보다 잘한다.

"그러면 내가 왜 필요하지?" — 이 질문은 2026년 버전의 존재론적 위기다.

Kurzgesagt가 이런 말을 한다. "우리는 우주의 생각하고 느끼는 부분이다. 우주의 감각기관이다."

AI는 패턴을 처리한다. 하지만 "이걸 왜 만들고 싶은지"를 느끼지는 않는다.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아, 이거 만들면 재밌겠다"라고 생각하는 건 인간만의 영역이다.

존재의 의미를 AI에게 물어봤자 답이 나올 리 없다. 의미는 느끼는 거지, 계산하는 게 아니니까.


사이드 프로젝트라는 자유

사이드 프로젝트를 많이 만든다. 대부분 아무도 안 쓴다. 몇 개는 나만 쓴다. 그래도 계속 만든다.

왜?

목적이 없으니까. 사이드 프로젝트에는 KPI도 없고, 데드라인도 없고, 이해관계자도 없다. 순수하게 "이거 만들면 재밌겠다"로 시작하고, "재미없어졌다"로 끝낸다.

이게 바로 낙관적 허무주의의 실천이다. 우주적 스케일에서 아무 의미 없으니까, 하고 싶은 걸 하면 된다. 실패해도 우주는 신경 안 쓴다. 성공해도 마찬가지다.

그 사이에 내가 느끼는 즐거움만이 진짜다.


5,200주

morning

100세까지 살면 5,200주다. 40대라면 2,600주쯤 남았다.

숫자로 보면 적다. 하지만 Kurzgesagt가 말한 것처럼,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건 놀라울 정도로 많다. 갈 수 있는 곳이 있고, 도와줄 사람이 있고, 경험할 행복이 있고, 만들 수 있는 것이 있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지금 이 순간도, 5,200주 중 하나다.

낭비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아니, 낭비여도 상관없다. 어차피 우주는 신경 안 쓰니까.

커피가 식기 전에 — 오늘 하고 싶은 게 뭔지 한 번 생각해보자.


원본 영상:

더 읽어보기:

  •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알베르 카뮈, 《시시포스 신화》